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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3 매뉴얼 권하는 사회
What the..?

이력서를 쓰다보면 학력과 경력 같은 공식적인 인적사항 외에 자신의 취미와 특기를 요구하는 기업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어느 학교에서 어떠한 교육과정을 받았으며 어떠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는 객관적인 정보를 서술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영역을 갑작스레 물어보는 것은 조금 당황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라면 이 대목에서라도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적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된다. 특이한 취미를 적어냈는데 그 취미가 너무 강력(?)한 것이라면 괜히 악취미로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지만, 차라리 독서와 같은 무난한 취미를 적어내어 ‘뻔한 취미를 가진 뻔한 인재’로 비춰지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서다.

휴대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단계를 넘어, DMB와 같은 서비스로 언제 어디서나 미디어를 접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종이에 인쇄된 책은 기술적으로 그리 매력적인 미디어라고 보기 힘들다. 이러한 관점으로는 결국 독서라는 뻔한 취미 자체가 뉴미디어라는 광풍에 휘몰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 같지만,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대입 본고사 폐지 이후 사실상 그 자리를 꿰어 찬 논술의 왕도는 더 이상 학원이 아니라 체계적인 독서라며 독서교육 열풍이 불고 있고, 기업 경쟁력의 핵심인 창의적인 기획의 원천은 책 속에 있다며 독서를 장려하는 독서경영 또한 우리 사회의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독서를 권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고자 한 번 서점으로 나서 보자. 번화가에 명맥을 유지하는 서점에 들어가 소위 베스트셀러 코너를 찾아보면 순위권에 들은 책들은 대부분 하나의 분류에 속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고시 합격자를 무더기로 배출한 것 같은 명문대와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문파는 이름하야 ‘자기계발’ 이다. 소박한 삶의 자세에서부터 성공을 위한 방법론과 함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인간관계 관리까지…. 자기계발서는 이를 읽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을 모두 갖출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방송으로 치자면 마치 시청률과 공영성을 모두 갖춘 프로그램과 같은 자기계발서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과거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놀라운 시대.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먹고 살기 힘든 현실에 머물러 있다.

세상살이가 쉽지 않다 보니 이러한 자기계발서 열풍이 오게 된 것이라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를 논하는 것과 같다. 자기계발서의 본질은 자아를 반영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저자가 주장하는 논리대로 삶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환경과 무관하게 20대가 끝나기 전에 이런저런 일을 꼭 해봐야 하고, 최근 영웅화된 뉴스메이커들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따라가야 하며,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사소한 인간관계를 가지는 것 까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저자의 조언에 의존하는 삶은 과연 누구의 삶인가?

자기계발서가 인문·교양서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자기계발서의 행동강령을 준수하는 것만이 무한경쟁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넘어 미디어에서까지 ‘올해의 필독서’라며 추켜세우는 현실 속에서, 자기계발서는 마치 올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매뉴얼처럼 자리 잡았다. 책의 주된 소비자들이 우리나라의 현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인 20~40대 청·장년층임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매뉴얼에 길들여져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이들이 이끌어가는 사회의 미래는 보나마나 일 것이 아닌가?

이쯤에서 책에 쓰인 대로의 삶이 아닌, 내 스스로 설계한 내 자신의 삶을 살아가자는 한마디 정도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러기도 녹록치 않다. 서점에 마치 기라성처럼 진열된 자기계발서 속에서 발견한 한 권의 책 <시끄럽다, 나는 내 식대로 산다>. 이 책 쓰신 분, 밥은 먹고 다니시나요?

김효준 (사회과학대학 미디어영상학부 · 04)

이 글은 광운대신문 602호(2007년 3월 2일자)에 기고하였다. 그러나 광운대신문사 쪽 어르신들께서 멋대로 수정하신 뒤 게재하여,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아래와 같이 공개 질의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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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l 2008/08/03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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