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책을 읽읍시다'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09/01/04 현장기록, 방송노조 민주화운동 20년 (2)
  2. 2008/08/21 거짓의 MBC를 끄자 - 조갑제 기자의 추적(?)
  3. 2008/08/17 MBC, MB氏를 부탁해 - 사상 최초로 기록될 만한 '방송사'를 향한 팬레터
  4. 2008/08/15 8월 15일의 신화 - 일본 역사 교과서, 미디어의 정치학
  5. 2008/08/13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6. 2008/08/09 이름 없는 주드 - 지능적 안티페미니즘의 남성우월주의 소설?
  7. 2008/08/07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현장기록, 방송노조 민주화운동 20년 - 8점
새언론포럼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

이 책만은 개정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간부로 활동했던 진보 성향의 전·현직 언론인들을 주축으로 한 새언론포럼에서 방송 민주화운동 2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한 <현장기록, 방송노조 민주화운동 20년>. 방송업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예비 언론인부터, 언론을 연구하는 일선 연구자까지 다양한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그런 언론사적 가치를 지닌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과거의 기록 중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방송사 노동조합의 파업과 같은 일련의 투쟁은 모두 임금인상과 같은 복리후생 쟁취를 위한 것들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측면으로 생각해본다면, 조합원들에게 이들 노동조합은 얼마나 한심(?)한 존재였을까. (orz)

어쨌든 우리 나라도 형식만 갖춘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그런 시대를 어느정도 벗어나게 되면서, 이러한 책은 다시 출간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인 시간은 계속되지만, 딱히 더 추가할 내용이 없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미 머나먼 옛 이야기를 담은 고전의 반열에 들어선 듯 하다. YTN
부터 시작해서, KBS를 거쳐 MBC까지 이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 만으로도 이 책 한 권 분량 정도는 가뿐히 채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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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책을 읽읍시다 l 2009/01/04 23:16
  거짓의 MBC를 끄자 - 1점
  조갑제 지음 / 조갑제닷컴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

국방부 불온서적 선정 파문 이후, 현 정부 선정 최고의 불온서적으로 등극할 전망인 <MBC, MB氏를 부탁해>의 출간에 따라 정반대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서적이 출간되어 흥미롭다.

<MBC, MB氏를 부탁해>와 달리 108쪽의 슬림한 분량으로 출판된 조갑제 씨의 <거짓의 MBC를 끄자>는 슬림한 두께만큼 가격까지 낮추어, 단돈 5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누구나 부담없이 사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한 인터넷신문의 기자로부터 최근 서울시청 앞 보수단체 집회에서 이 책을 나눠주는 장면을 목격하였다는 제보를 받은 점에 비추어보아, 사실 낙엽 한 장이라는 가격도 큰 의미를 둔 것이 아닌 듯 싶다.

이렇게 작은 분량으로 부담없이 접할 수 있는 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는 것. 가히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방불케 하는 모양새인데, 이와 비슷한 장면이 지난 역사에서 연출된 바가 있어 아래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토록 '빨갱이'를 싫어하시는 분들이 그 '빨갱이'들이 했던 짓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니, 그저 한심할 따름.

태극기 대신 인공기(人共旗)를 채택한 북한

(전략)…4월 27일에 열린 북조선인민회의 특별회의에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이 승인되었다.

이 헌법에 따라, 태극기는 폐지되고 '인공기(人共旗)'가 쓰이게 됐으며, 애국가도 폐지되고 새 국가가 채택되었다. 태극기 폐지에 앞장선 사람은 김두봉이었는데, 그는 태극기의 태극 4괘가『주역』의 음약사상을 기초로 한 것임을 지적하면서, 음양사상은 "반민주주의적인 지배계급의 미신적 사상"이며, 태극기는 "이조 봉건시대의 망여유물(亡餘遺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서 조선 민중이 보여준 태극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언급하면서 앞으로는 태극기가 통일과 단결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자, 김두봉은 자신의 이름으로『왜 태극기를 없애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다량을 출판해 북한 전역에 뿌리기까지 했다.…(후략)

강준만,『한국 현대사 산책 · 1940년대편 2권』(인물과사상사, 2004), 149~150쪽.


참고로 이 책의 평점이 1점인 것은 직접 읽어보지 못해서 평가를 내릴 수가 없다는 의미.(정확히는 '0점'이 맞는 것인데, 알라딘의 시스템 상 '0점'에 대한 이미지도 1점과 같다.) 이 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원하시는 분, 저도 한 권 받아 볼 수 있도록 너그러운 마음을 베풀어 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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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책을 읽읍시다 l 2008/08/21 16:45
TAG MBC, 조갑제
  MBC, MB氏를 부탁해 - 7점
  집단지성 엮음 / 프레시안북

사상 최초로 기록될 만한 '방송사'를 향한 팬레터

'집단지성'이라는 이름 아래 뭉친 20여 명이 모여 만든 <MBC, MB氏를 부탁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그 내용또한 다양한데, 이 책의 독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독자는 우리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생활인-우리들이다. 언론인도 아닌 나에게는 이명박 정부가 언론장악을 하든지 말든지 관심없다고 치부하는 경향이 적지 않지만, 이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미디어 공공성이 무엇이며, 이것이 왜 중요한지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독자는 MBC의 구성원들이다. 필자들이 MBC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들은 가히 스타에게 보내는 팬레터(?)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간혹-'간혹'이 아닐지도...-비판적인 내용이 보이기도 하지만, 쓴 소리도 다 애정과 관심이 있으니 하는 것 아닌가?

몇 개월 전, 한 아이돌 가수가 자신에게 온 팬레터를 대기실 쓰레기통에 버려 작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 보다도 몇 개월 전, 예능국의 한 프로그램 앞으로 보내진 팬 픽션 서적들이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받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다시는 받을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이 '팬레터'. 아무 생각없이 나뒹굴게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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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책을 읽읍시다 l 2008/08/17 22:25
  8월 15일의 신화 - 9점
  사토 다쿠미 지음, 원용진.오카모토 마사미 옮김 / 궁리

일본 역사 교과서, 미디어의 정치학


'금일 정오 중대 방송, 1억 국민 필청'. 1945년 8월 15일 서울 시내 각지에 붙은 이 벽보에 따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고하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의 떨리는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이는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이었다. 8월 14일 포츠담선언 수락에 이어 그날 밤 이에 대한 메시지를 녹음한 것을 다음날 정오에 방송한 것. 그렇다면 우리의 광복절, 일본의 종전기념일로 자리잡은 8월 15일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욱일승천기를 앞세운 일본의 태평양전쟁 작전 중지일은 8월 16일.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함에 따른 미국과 구 소련의 대일전승기념일은 9월 2일. 중국과 몽골의 항전승리기념일은 9월 3일이다. 우리의 광복절은 그날 정오의 방송을 통해 우리 민족의 '독립'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이지만, 전쟁 당사자인 일본에게는 '종전'이 하루 아침에 끝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시간의 흐름 속에, 단지 방송이 편성된 날짜에 불과한 8월 15일이 그들의 '종전기념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현실에서 일본의 매체-신문, 방송, 교과서-들이 이루어낸 성과(?)임을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일본의 이러한 과거의 모습에서, 최근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이 투영되는 듯 하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광복 63주년! 우리의 오늘이 있게 한 그 시절, 그 분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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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책을 읽읍시다 l 2008/08/15 01:25

아리랑 상세보기
님 웨일즈 지음 | 동녘 펴냄
12년만에 개정3판으로 재출간되는『아리랑』. 미국인 여기자 님 웨일즈가 1937년에 기록한 한국인 독립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일대기이다. 1920~1930년대라는 정치적 격동기를 살다 간 김산의 고뇌, 좌절, 사랑, 열정, 사상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았다.


사실 <아리랑-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이하 <아리랑>)이라는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년 전 여름이었다. <아리랑>에 대한, 그리고 '김산'에 대한 소문 아닌 소문(?), 즉 그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한번쯤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과 다소 혼동이 있어 몇 권으로 이루어진 대 서사시와 같은 다소 긴 그의 일대기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단 한 권으로 그의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단 한 권에 우리의 근대사회가 드라마틱하게 담겨있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김산의 생애에 비해, 그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김산의 활동 영역과 현대 우리사회의 이념적인 차이로 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제 경찰에 두 번이나 체포되었으나, 그들의 회유와 갖은 협박에 굴하지 않고 그 두 번 모두 석방된 김산, 그를 '일제 스파이'로 몰아부친 중국공산당조차 그의 사후 40여 년 뒤 그의 결백을 인정하는 복권을 결의하였고, 북한에서도 김일성의 회고록을 통해 그의 항일투쟁 활동이 인정되었으나,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을 했던 김산의 행적은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다소 불편한 진실이었던 것이 아닐까? 36년간 일제의 폭정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수립 후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항일투쟁에 한평생을 바친 이들보다 친일·친미·자본주의자들을 우대하고, 그들을 이 사회의 엘리트로 편입시킨 것을 비추어 볼 때, 김산 또한 광복 후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면, 대한민국 정부에게 요즘 유행한다는 표현으로 '이뭐병' 취급을 당하는 것은 둘째치고, 귀국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아리랑>이 우리 나라에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출간과 동시에 용공서적으로 분류되어 판매가 금지되었고, <아리랑>을 출간한 동녘출판사는 요주의대상 출판사로 낙인 찍혔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 정부는 장지락(김산의 본명)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고, 이와 함께 동녘출판사에서는 <아리랑>의 개정 3판은 발행하면서 김산은 우리 사회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김산은 1905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유명무실한 황제가 군림하는 대한제국 시대의 끝자락으로 사실상 그 주권이 일제에게 침해되고, 한일병합조약으로 조선왕조가 멸망한 시기였다. 이로 인해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일제 순사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실상과 흉흉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김산은 서양 선교사가 설립한 숭실학당에 입학하여 신식 교육을 받는 한편, 기독교를 믿는 등 새로운 문물의 수용에 나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후 기미독립운동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구금된 뒤 숭실학당에서 제적되었으나 그의 작은 형이 의학 공부를 하라며 대학입시 준비 차 도쿄로 유학을 보내기도 하는데, 이는 그의 집안에서 김산은 명석한 두뇌를 가졌고, 새로운 문물의 수용에 거리낌이 없는 진보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 단면이다. 하지만 그는 모스크바로 가기 위해 작은형이 심부름으로 맡긴 200원을 들고 가출하는 것 등으로 보아 다소 성과지향 중심의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그의 모스크바 행은 중국 하얼빈에서 좌절되고 마는데, 이는 시베리아 내전과 당시의 복잡했던 국제 분쟁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차선책으로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해 추운 겨울 만주벌판 700리 길을 도보 횡단하기 이른다. 700리는 약 275km에 이르는 거리이다.

모국도 아닌 생소한 타지에서 혹한기의 겨울 길 700리를 혈혈단신으로 걸어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을 추위와 싸우고, 산짐승과 싸우고, 마적과 싸워야 하는 멀고도 험한 길을 참아내며 그는 결국 자신의 뜻대로 신흥무관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이는 고스란히 그로 하여금 어떠한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는 삶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입교 및 졸업한 뒤 독립운동의 뜻을 품고 상해로 건너가는데,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에서 일하며 도산 안창호, 이동휘 등을 만나며 민족주의자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일제의 식민지로 병합된 현실 속에서, 일제의 식민 지배 독립과 함께 우리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를 창건하는 것은 당시 독립운동을 하는 모든 이들의 기본적인 사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의열단에 가입하면서 톨스토이 문학과 무정부주의에 심취하게 된다. 이 점은 그의 행보에서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식민지배 시스템의 심장부인 조선총독부를 몰아내는 것 자체로는 조선에서의 현 정부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가 성립이 되는데, 조선총독부를 몰아낸 이후에 대한 대비는 무정부주의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사상으로 보았을 때 그의 독립운동의 지상과제는 그 결과가 어쨌든 일단 우선적으로 조선총독부를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라는 해석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 이 부분에서도 그의 성과지향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러나 그는 최종적으로 공산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 노선을 지향하게 된다. 일제 치하에서의 공산주의는 기본적으로 금기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 당시 중국 대륙의 패권을 차지한 국민당의 핍박 속에서도 그는 중국공산당 당원으로서 중국혁명의 성공과 이에 따른 조선 독립을 위해 그의 한 평생을 바쳤다.

일제강점기의 우리 민족은 한반도 내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각지-아프리카 등 오지는 제외하더라도-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들의 독립운동이 어떠한 분야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든, 독립을 위해 진정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바친 그들의 독립운동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가치 있는 행위로 인식해야 한다. 본인이 다소 성과지향 중심의 인물로 평가한 김산도 <아리랑>의 마지막 장인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를 통해 패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의 활동이 실질적으로 1945년 광복에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는 논하기가 어렵다. 실질적으로는 태평양전쟁을 치른 미국에 대한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으로 이루어진 광복인지라, 그 누구의 공적을 따지기도 어렵지만, 그의 사상과 그에 따른 활동 무대가 이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공산주의 혁명을 통한 공산국가 창건을 최우선과제로 삼았고, 이에 따라 김산 또한 이를 그의 최우선과제-그의 최우선과제는 '독립'이지만, 그의 직접적인 행동으로서의 최우선과제를 논한다면-로 삼았다. 중국공산당의 공산주의 혁명에는 김산과 그의 동료 김충창, 오성륜 뿐만 아니라 많은 조선인들이 동참하였는데, 이들이 이 혁명에 동참하게 된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세계 열강의 제국주의가 식민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현실 속에서 식민지배를 옹호할 진영은 공산주의뿐이며, 중국에 이어 전 세계가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독립의 길은 저절로 열릴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김산과 그의 동료들의 생각은 그들은 너무 순수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행정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을 지낸 Woodrow Wilson이 주장한 '민족자결주의'의 결과를 비추어볼 때, 중국공산당 또한 자국의 혁명의 성공여부에만 관심이 있을 뿐 실제로 조선의 독립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과업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활동을 무의미한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김산과 그의 동료들의 활동이 직접적으로 독립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들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한 가치는 '민족'이었다. 이는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갈등 문제뿐만 아니라, 공산당 내에서도 벌어지는 민족간의 갈등을 개탄하는 그의 모습에도 잘 나타나있다. 그러한 점으로 비추어볼 때, 김산과 그의 동료들의 활동은 민족의 독립에 대한 진정한 갈망이 내재된 활동이었음이 분명하다.

2007년 현재, 김산은 죽었다. 그가 생존해 있다면 102세의 노인이겠지만, 현대 사회의 평균 수명으로 볼 때 생존 가능성도 희박할 것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중국공산당 내의 혼란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김산은 광복 60주년 그리고 탄생 100주년을 맞은 2005년 대한민국 정부의 훈장을 받게 되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채 독립운동을 한 그에게 우리 정부가 훈장을 추서한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끼긴 하지만, 이미 세상을 등진 망자에게 번쩍이는 훈장 하나가 그리 중요한 것일까?

김산은 우리 사회에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의 집합에서 뉴페이스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역사 속에서 발굴된 김산 뿐만이 아니라 제2의 김산, 제3의 김산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랑>의 부제인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과 같이, 김산은 그리 길지 않은 그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 개인의 부를 위한 것도 아니었고,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치열한 삶은 오직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불꽃 같은 삶은 서적 <아리랑> 뿐만 아니라, 한 편의 드라마로 연출되어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이에게 교훈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광복 60년을 맞아 大기획 드라마를 내놓은 SBS의 작품은 <패션 70s>였다. <패션 70s>의 기획의도를 살펴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시절인 1960~1970년대는 그토록 무겁고 칙칙한 시대가 아니었다면서, 1960~1970년대에 정치외교·패션·역사철학 등 시대의 센세이셔널을 창조하는 상류사회 주인공들을 통해 중·근세를 배경으로 한 어떤 유럽영화보다도 아름답고 화려한 선 굵은 드라마를 지향한다고 한다. 광복을 위해 노력한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1960~1970년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그 시기 또한 광복 60년을 맞이하기 위한 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고 치자. 그 외에 측면에서는 이 드라마에 어떤 내러티브가 도대체 광복 60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제작진은 국민소득이 100~200달러 선을 유지하던 그 어려운 시기에, 마치 별세계에 존재하는 듯한 4명의 주인공들-디자이너, 대통령 보좌관, 레저스포츠 강사-의 중·근세 유럽귀족사회와 같은 상류층의 세련된 유럽풍 문화를 통해 그들의 불꽃 같은 삶을 재조명 한다고 한다. 보릿고개를 극복하기 위해 분식장려운동을 강요당하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수두룩했으며, 학교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사가 제자에게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하던 그 시절.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으로 국가경제를 겨우겨우 끌어올리던 그 시절에, 당장 끼니걱정, 땔감걱정 등은 해본 적도 없을 듯한 유럽귀족사회와 같은 상류층들로 불꽃 같은 삶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망발이 아닌가? 트렌디 드라마로서 <패션 70s>의 가치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가타부타할 영역은 아니지만, 이러한 소재로 '광복 60년'을 기념하는 大기획 드라마를 내놓은 것은 미친 짓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SBS은 광복 60년 대하드라마로 박경리 작가 원작의 <토지>를 내놓기도 했는데, <토지>는 소설의 시대배경과 그 내용을 비추어볼 때 <패션 70s>에 비하면 매우 양호한 케이스이지만, 실존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소설의 허구를 토대로 했다는 것이 다소 빛이 바래는 현실이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김산은 30여 년 한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가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하였으나, 단 하나-그 자신-에 대해서만 승리했다고 한다. 그는 갖은 비극과 실패를 겪어도 좌절하지 않았다. 비극인 인생의 한 부분이고 억압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자신의 확고한 가치를 지닌 채 불꽃 같은 삶을 살다 갔다. 그의 이야기야 말로 진정한 광복 60년 특별기획 드라마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리랑>의 드라마를 지상파 방송에서 보는 것은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원작을 토대로 극본을 작성하는 제작의 측면에서는 큰 애로사항이 없지만, 한국 드라마의 가장 큰 중심을 이루는 ‘남녀간의 사랑’이 다소 결여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시청률 지상주의를 지닌 일부 연출자나 방송사 경영진의 편협한 사고이기에 큰 애로사항은 되지 않는다. 정말로 큰 장애물은 따로 있다.

바로 이는 처음에 언급되었듯, 김산의 이야기는 어떤 이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한평생을 바친 김산의 진정성은 뒤로 한 채, 단지 그의 사상이 공산주의란 이유 만으로 작품을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국가단체에 가입한 자를 미화했다는 주장부터 시작하여,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는 등 국가보안법 제7조 1항에 근거하여 제작진과 출연진 등이 고소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리랑>의 드라마화를 반대하시는 분들은 대체로 서울특별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구국기도회를 펼치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고, 광복절 집회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같이 흔드시며 ‘미국 만세’라는 구호를 잊지 않으시는 그런 분들일 것이다. 그 분들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그 분들이 그렇게 모여서 집회를 가지시는 이유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바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김산 또한 중국공산당 내에서 활동했지만, 그가 중국공산당에서 활동한 것은 바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였다. 그에게 공산주의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서울특별시청 앞 잔디광장에 그 분들과 김산은 서로 다른 가치를 지향한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 정부가 김산의 훈장을 추서한 2005년은 광복 60주년이자 김산 탄생 100주년이라는 절호의 찬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현실로 인해 이를 추진하기는 다소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한동안 현실적인 여건 속에서 김산을 소재로, <아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등장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광복 60년·70년과 같은 수적 의미가 있는 해도 아닌 것도 문제이지만, 소재 자체가 가볍지가 않은 소재인지라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덮어두고 지나가기엔 너무나 아까운 진정한 불꽃 같은 삶이다. 이러한 그의 삶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이 시대의 언론인으로서 행해야 할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빠른 시일 내에 실행되기는 다소 어렵겠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면 본인은 그를 TV속의 이야기로 만날 수 있도록 거침없이 추진할 것이다.

이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KBS 스페셜>의 '광복 60년 기획'으로 2005년 7월 30일 <나를 사로잡은 조선인 - 혁명가 김산>이 제작·방영되었다고 한다.(사실 책 표지에 이를 알리는 광고메시지가 첨부되어 있으나, 도서관에서 빌려본 터라..) 아래의 사이트를 통해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함께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http://www.kbs.co.kr/1tv/sisa/kbsspecial/vod/1358179_116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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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책을 읽읍시다 l 2008/08/13 17:13
이름 없는 주드 1 상세보기
토머스 하디 지음 | 민음사 펴냄
<테스>의 작가 토마스 하디를 절필로 이끈 문제작 『이름 없는 주드』제1권. 당시의 교육 제도와 결혼 제도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짐으로써,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논객들에게서 혹독한 공격을 받았따. <비운의 주드>라 소개된 이 작품을, 영문학자...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b>주드</b>는, 학자와...크라이스트민스터로 떠난 <b>주드</b>는,...하지만 <b>주드</b>의 기대와는 달리 허위의식과...


지능적 안티페미니즘의 남성우월주의 소설?

주드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좌절의 원인은 대부분 시대를 너무 앞서간 주드와 수, 그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단지 그들의 일상이 급진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주드가 작품 초기에 직면하게 된 현실의 벽은 단순히 사회적인 통념으로 이룰 수 없는 부분이 아니었다. 부르주아 계급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아니고서는 재정적 문제로 인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사회구조적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 수를 만난 주드는, 법적으로 부인이 있는 자신의 상태로 인해 수가 한때 자신의 은사였던 필롯슨과 결혼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소위 '신여성'이라는 수의 결혼이 사랑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중퇴하게 된 교육대학의 학비를 지원해줬다는 이유 만으로 노예계약(?) 마냥 결혼하게 되었다는 점으로 이 작품의 남성우월주의는 서서히 드러난다.

결국 사랑없는 결혼은 파국으로 치닫고, 수는 주드와 함께 사랑의 도피-필롯슨의 동의가 있었지만-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곧 수의 호적(?)을 깨끗이 정리해주는 필롯슨의 행보에 발맞추어 적절한 시기에 호적정리를 제대로 하자며 나타난 아라벨라. 이 두 인물이 활약으로 수와 주드는 법적으로 부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그들은 부부가 아닌-영화를 볼 때는 졸아서인지, 주드의 호적이 정리되지 않아 결혼을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고-동거인의 관계로 남는다. 둘 다 법적으로 '돌아온 싱글'이 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그들의 선택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다. 단순한 행정적 절차인 결혼신고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결혼신고를 하지 않아 온갖 핍박을 받고, 그러한 현실을 견디는 그들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점이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단순히 서류상의 신고에 불과한 결혼절차에 대해 주드는 그리 부정적으로 생각치 않지만, 수의 반대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면서까지 지키려는 그들만의 소중한 가치와, 그 가치를 눈감고 지나감으로써 그들이 받지않게 될 핍박을 놓고 비교한다면 보편적인 사고에서 어떠한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인지 생각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들의 선택으로 얻게된 핍박으로 인해서인지,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한순간에 잃게 되는 슬픔을 맞이한다. 리틀 파더타임이 자신의 동생들을 죽이고 자살한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벌어지는 향후 전개는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남성우월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을 겪음에도 주드는 정신을 추스르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의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인간상으로 거듭(?)나지만, 수는 사건의 충격으로 인해 急무기력한 캐릭터로 전락하고 만다.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신에게-정확히는 사회에-도전한 자신의 부덕의 소치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진정한 남편-하지만 이미 법적으로 정리된-필롯슨에게 돌아가겠다며 고집을 부리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주드를 읽으면서 끊임없이 드는 생각은 '그들은 인생을 왜 이리 피곤하게 사는가?'였다. 이러한 '피곤한 인생'을 걸어가게 된 주요한 결정은 수의 결정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하나의 터닝포인트로 인해 수는 그동안 지켜온 자아를 저버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항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옛말을 은연중에 그리고 치밀하게 드러내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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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책을 읽읍시다 l 2008/08/09 23:43
TAG 주드
  88만원 세대 - 8점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88만원 세대'라는 단어를 유추하는 과정이 다소 공감이 가진 않으나, 책 속에 담긴 내용은 '88만원 세대' 뿐만 아니라, 중장년층도 한 번 쯤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20대의 95%가 인생의 대부분을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전망은 다소 극단적이긴 하지만, 취업을 위해선 그 어떤 행동도 불사하는 우리 시대 20대의 자화상으로 비추어볼 때 우리 사회의 승자독식 게임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다소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사회문제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으며, 경제학원론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있는 경제학이론에 대한 나름 신선한 접근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서는 높은 학점과 토익점수로 멋을 낸 취업시장의 신선상품으로 거듭나는 것 보다는, 우선 이 책을 읽고 우리 사회가 지금과 같은 현실에 처하게 된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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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책을 읽읍시다 l 2008/08/0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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